얼마 전에 한 번 보고 난 뒤 오늘 갑자기 생각나서 한번 더 보게 된 영화 '바람'.
영화에 대한 정보는 거의 없이 '응답하라 1994'에 나오는 배우들이 대거
출연한다고 해서 보게 됐던 영화다.
태생이 부산이라 그런지 자연스러운 부산 사투리도 좋았고,
내용 역시 학창시절의 공감대가 많아서 집중하면서 볼 수 있었던 영화였다.
여러가지를 생각하게 만들어줬고 그 중, '아버지'를 떠올리게 해 준 영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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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런 류의 가족 영화, 또는 주인공의 성장 영화는 나의 입장에서는 크게 공감이 가지 않는다.
'바람'의 경우는 성장 영화이지만 학창시절을 주 소재(그것도 특히 부산을 배경으로 한)로
삼아서 그 친근함으로 인해 여느 성장 영화와는 또 다르게 다가 오긴 했지만.
그런 공감대를 느낄 수 없어서인지 평소에도 영화를 고르는 취향은 이런 류의 영화를
대체로 배제하는 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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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인공이 아버지 살아 생전에 전하지 못한 말.
나 역시 한번도 한 적이 없었다.
감정이입이 되어서인가? 그 장면을 볼 때면 가슴 속에서 울컥하는게 느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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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아빠'는 이제, 얼굴도 기억이 나질 않는다.
집에 거의 계시지도 않았을 뿐더러, 지금은 생사도 불분명하다.
나의 '아버지'는 날 늘 생각해 주시고 아껴 주셨지만 난 거부감에 그렇지 않았다.
어린 시절, - 지금도 별 다를건 없지만 - 아빠는 단지 '아빠'일 뿐이었고
아버지는 아버지로써의 책임을 다 하고자 하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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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목욕탕에 아빠랑 가 본 적이 한번도 없었다.
그렇기에 아빠 등을 밀어준 적도, 내 등을 아빠가 밀어준 적도 없다.
아버지와는 몇 번 간 기억이 있지만 익숙하지 않음과 어색함이 합쳐져 머리가
어느 정도 커졌을 땐 더 이상 같이 가기를 거부했다.
나는 아빠와 엄마, 온 식구들끼리 같은 밥상에서 밥을 먹은 기억이 없다.
그래도 아버지, 엄마와 함께 외식은 가끔 했었던 기억이 있다.
아빠는 가족이었지만 가족처럼 지내지 못했고,
아버지는 가족처럼 지내고자 했지만 나에겐 명목상의 '아버지'일 뿐이었다.
그래서인지, 가족 영화나 성장기를 주제로 다룬 영화를 볼 때면 별 감흥이 없다.
공감을 할 수가 없기 때문에.
공감은 못하지만 벅차 오르는 느낌은 있다.
늘 그게 뭘까, 왜일까라고 생각해 봤었다.
아마도, 나도 그런 감정을 느끼고 싶다는 바람(Wish) 아니었을까.
내가 가져 보지 못한 감정에 대한 그리움일까, 가져 보고 싶어하는 바람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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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군대 가기 전, 아버지께서 내가 좋아하는 샌드위치를 손수 해 주셨다.
말이 샌드위치지 식빵 두 개에 달걀 프라이와 양배추, 마요네즈와 케찹이 전부다.
어릴 땐 그게 그렇게 맛있었다. 가끔 지금도 그 맛을 떠올리곤 한다.
입대를 이삼일 앞둔 저녁에 날 불러 앉혀 손수 그걸 만들어 주셨다.
소주 안주 삼아 샌드위치를 만들어 먹으며 이런 저런 얘기를 나눴었다.
그 날 처음으로 '아버지'라고 겨우 불러 드렸었다.
제대하고 몇 년 후, 두번째로 '아버지'라고 불러 드렸을 때가 마지막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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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영화 '바람'을 보면서 유난히 아버지 생각이 많이 났다.
더 잘해드리지 못한 것을 많이 아쉬워 하며.
지금에 와서는 부질없을지언정, 예전 보다 훨씬 많이 마음 속으로 아버지를 불러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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